어느 민주노동당 당원이 본 조선노동당 대표자대회
북쪽에서 이른바 '8월 종파 사건' 이후 44년만에 당대표자회의가 열려 후계 구도가 정해 졌다 한다. 예상과 다르지 않다면, 북의 다음 최고 지도자는 아마도 28살의 그 청년이 맡을 것 같다.
누군가는 이러한 형태의 권력승계가 북사회만의 특수한 방식이며, 여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입장이다.
물론 외교적 관계만 보면 그럴 수 있다. 권력을 쥔 자들은 간통을 했다고 여성을 돌로 쳐 죽이는 나라와도 외교적 관계가 있다면 입을 다문다. 내전을 빙자한 인종청소가 이뤄지는 나라라도 외교적 관계가 있다면 입을 다문다.
북 체제에 대해서 말해서는 안되나?
하지만 민주노동당에게 남과 북은, 외교적 관계를 맺고 있는 별개의 국가에 불과한가? 특히 지금 북체제에 대해 말을 하지 말자는 많은 민주노동당원들은 과거에 ‘전국적 관점’에서 변혁운동을 사고하자고 했던 분들이다. 전국적 관점에서 변혁을 사고하자는 것이 조선노동당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면 할 말은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게다가 우리는 사회주의의 원칙과 이상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진보정당이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몇 개 남지 않은 사회주의를 천명하는 국가가 매우 납득할 수 없는 권력창출과 승계 방식을 보여줬다. 그럼 진보정당이 여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되나?
오히려 역사를 살펴보면, 사회주의 운동사는 다른 나라 정당 사이에 서로 치고 받고 싸웠던 역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 ‘간섭’이 당연했다. 레닌시대 코민테른은 그야말로 각국 노동자 정당들이 ‘상호개입’을 위해 논쟁했던 모습을 보여줬다. 서슬퍼런 그 스탈린 시대에도 이탈리아 공산당의 보르디가는 소련에 가서 무려 2시간 이상을 스탈린을 비판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가깝게는 중-소 논쟁도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다른 정당 문제이니 아무 상관없다는 식은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국제주의 전통을 부정하는 태도이다.
혈통을 기준으로 한 권력승계, 사회주의 원칙 심각하게 훼손
물론 문제는 전례가 아니다. 문제는 역시 권력승계의 내용과 방식이며, 핵심적으로 피붙이에게 후대 권력을 물려준 문제이다.
하지만 도대체 각종 사회주의 문헌 어디에 당과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제한된 그룹, 그것도 혈통으로 제한된 그룹 안에서 선발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있나? 이는 보통선거로 지도자를 선출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문제제기가 아니다. 많은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보통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았지만, 노동계급과 근로인민을 대표할 자격을 계급투쟁과 민족해방투쟁 속에서 스스로 획득했다.
하지만 북의 방식은 이것도 아니다. 3세대에 걸친 북한의 후계 승계방식은 혈통과 같은 배타적인 집단 안에서 다음 대 지도자를 고르고, 여기에 대한 충성심을 조직하고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게 됐다.
백번 양보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간주되는 김정은이라는 청년이 북의 인민 속에 그 영도력을 인정받는 과정이 있다고 해도, 사실상 무오류의 ‘철인군주’로 간주되는 수령이 특정가계에서 계속 배출된다는 사실은 ‘세습’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한다.
이는 민주주의 일반원칙은 물론, 소수 정치엘리트가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인민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대표를 선출하고, 더군다나 그 대표를 노동계급과 인민이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다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원칙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이다.
자주파 이제는 북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그럼에도 많은 자주파 당원들은 이번 권력승계 과정에 당혹감을 표현하면서도 이를 북 체제의 고유문제이니 건드리지 말자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 남한 자본주의와 미제국주의와 싸웠던 많은 투사들이 북한 정권에서 어떤 대안체제를 보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주저감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들도 확신이 없고, 자신들이 획득할 대중의 지지는 더군다나 확신하기 어려운, 그러한 형태의 믿음이라면 밑바닥부터 재검토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북한 사회주의의 과거 성과가 아무리 긍정적이라 해도, 혈통승계와 같은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유지할 수도 없는 기형적 변질을 거친 사회주의가 북의 사회주의라면, 이제는 그 믿음을 접어야 한다.
아니,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적어도 남한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조직된 진보정치세력이자 국민대중을 상대로 정치행위를 하는 진보정당이, 최소한의 유감을 표시하는 정도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물론 북 사회주의에 대한 선망을 버린다고 해서 그것이 반북적이거나 반통일적은 아니다. 북 사회주의에 대한 밀교적 충성을 포기하는 것과,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비전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만일 북 사회에서 혈통승계와 같은 이질적이며 비정상적인 체제가 장기화되고, 여기에 대해 남측 진보진영이 아무 발언을 하지 못한다면, 진보세력 주도의 통일운동은 물론 통일 자체에 대한 남측 대중의 기대도 반감될 것이다. 오히려 북 체제에 적정한 거리두기는 남측 통일운동이 자신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